Actions

Work Header

When Eros Comes at Night

Summary:

He was pouting openly, standing with one leg slanted and all the grace of a street delinquent. The hem of his skirt fluttered carelessly above his knees. From a distance, he might have looked like a particularly ill-mannered young maid.

Which was precisely the problem.
Luffy was a boy—had always been one. He had grown up in this manor as a hall boy.
And now he was supposed to wait upon the master?
As a maid, of all things?

Notes:

Hello! This fanfiction was written in Korean. (I used a translation tool for the summary and notes for your convenience. :P)

Since the story is set in a fictional world, please don’t worry about the historical period. Enjoy the story!

Chapter 1: The hall boy became a Maid

Chapter Text

 

 

 

로는 루피의 허리에 완벽한 리본 매듭을 지어주며 “다 됐어.”라고 말했다.

 

루피는 거울 속 자신을 봤다. 시종일관 부루퉁하게 입술을 비틀고, 짝다리를 짚은데다가, 치마 자락이 무릎 위에서 아무렇게나 살랑거리도록 놔뒀다. 얼핏 보면 불량스러운 소녀 메이드처럼 보이기도 했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루피는 엄연한 남자고, 이 저택에서 홀 보이로 길러진 것이다.

이제 와서 주인님의 시중을 들라니? 그것도 메이드로?

 

“토라오는 배신자야.” 루피가 꽃잎처럼 부드럽게 나부끼는 속치마를 들추며 중얼거렸다. 로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토라오는 배신자야! 내가 주인님에게 잡혀가게 두다니!” 루피가 더 크게 외쳤다.

 

“말조심 해.” 로는 패티코트에 뒤집어진 흔적이 남지 않도록 다시 주름을 잡아주었다. “이 저택에 들어온 이래로, 넌 줄곧 주인님의 소유였어. 잡혀간다는 말은 맞지 않아. 모르는 바가 아닐 텐데?”

 

루피는 로의 이런 점을 싫어했다. 논리적으로 맞는 말만 하는 성격. 평소의 로는 전혀 딱딱한 사람이 아닌데, 루피가 위로를 원할 때만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모진 소리를 했다.

루피는 입술을 말려들어갈 정도로 세게 다물고 자신 앞에 무릎 꿇은 로를 내려다봤다. 짧게 잘라 뾰족뾰족하게 솟은 머리카락이 얼핏 치마자락을 건드렸다.

순간 재미있는 발상이 치밀었다. 로를 골려줄 수 있는 아이디어.

루피는 패티코트를 매만지는 손이 떨어지기 전에 얼른 속치마를 들어 로의 머리를 그 안으로 파묻었다. 가슬가슬한 하얀 옷감과, 상반되는 부드러운 허벅지 사이에 로의 얼굴이 완전히 끼었다.

“뭐야!” 로는 버둥거리며 치마 안에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루피가 더 빨랐다. 그는 대어를 낚은 것처럼 로의 머리를 치마로 푹 감싸고 절대 놓지 않았다.

 

“안 놔줄 거야!”

 

“웃기지 마! 젠장,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야!” 로는 치마 아래 루피의 허벅지를 꽉 붙잡았다. “이거 놔!”

 

“주인님한테 안 보낸다고 약속할 때까지 안 놔줄 거야!” 루피는 팔에 알통이 배기도록 꽉 끌어안으며 억지를 부렸다. 정말 로가 약속하지 않으면 힘을 풀지 않을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엎치락뒤치락 레슬링을 반복하다가 로가 루피를 바닥에 완전히 눕히고 나서야 멀어졌다.

 

“잘 들어.” 괜히 힘을 빼느라 잔뜩 붉어진 얼굴로, 로는 으름장을 놨다.

“나는 버틀러로서, 부하인 네게 명령할 권리가 있어. 좋은 말 할 때 얌전히 주인님을 모실 준비해! 또 도망치면 가만 안 둔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로는 성큼성큼 큰 보폭으로 방을 응접실을 빠져나가려다가, 잠시 주춤하더니, 괜히 화를 내고 사라져버렸다.

루피는 바닥에 벌러덩 누운 채로 정교한 격자 무늬 벽지로 뒤덮인 천장을 올려다봤다. 숨이 가쁘고 혈기가 도는 팔다리는 팔팔한데, 그걸 쏟아부을 방법이 없었다.

이이이익. 그는 칭얼거리는 소리를 내며 발을 마구 구르고 카펫 깔린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보기 좋네.” 머리맡에서 친근하게 비꼬는 목소리가 들렸다. 루피는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을 봤다.

주황색 머리를 높게 묶은 메이드 친구 나미가 그를 향해 호호 비웃음을 지었다.

 

“그나마 메이드복이 잘 어울려서 다행이야. 아니었으면 너보다 우리가 더 끔찍했을 걸. 루피, 아니, 루시 양.”

 

“그렇게 부르지 마!” 루피는 씩씩댔지만 진짜 여자인 나미를 향해 폭력을 휘두를 순 없었다. “모르겠어! 왜 하필 나야? 난 메이드도 아니고, 심지어 여자도 아니잖아!”

 

“나야 모르지.” 나미는 심드렁하게 대꾸하며 루피에게 손을 내밀었다. “우리 주인님이 엄청나게 변태일지도 몰라. 여자를 곁에 두고 부리는 것보다, 남자에게 메이드복을 입히고 부리는 걸 더 좋아하는 변태.”

 

그러자 짜증을 담아 한껏 휘두르던 루피의 팔다리가 멈췄다. 그는 미간까지 찌푸려가며 곰곰히 생각하다가 나미의 손을 잡았다. “그렇다면 차라리 다행이야.”

 

나미는 웃음을 참지 않았다. “왜? 루피, 너 변태가 취향이니?”

 

루피가 진지한 눈빛으로 대꾸했다. “나미 네가 변태를 만나는 것보다 내가 만나는 게 나으니까.”

 

키득거리던 나미의 입술이 곧 멎었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루피를 바라보다가, 아주 가볍게 손을 당겼다.

나미가 끌어당기는 힘보다 루피가 스스로 일어서는 힘이 더 강했다.

루피가 변태 주인을 만난다면, 단단하고 강한 팔로 그를 때려눕혀 줄 것이다. 그런 의미로 한 말이라는 걸 나미도 알았다.

 

하지만 이왕이면 만나지 않았으면 했다. 비록 아주 잠깐이라고 해도, 그가 루피에게 저지르고자 하는 일이 어떤 상처가 될지 모르니까.

나미는 “역시 내가 대신 갈게.”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루피에게 끌어안긴 탓에 입과 턱이 그의 어깨에 묻혔다.

 

“괜찮아, 나미.” 루피가 말했다. “나한테 맡겨! 이상한 녀석이라면 꼭 날려버리고 올 테니까.”

 

나미는 루피의 어깨에 팔을 걸고, 조금 더 가까이 끌어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저택에서 일했다. 코르보 산, 국가에서도 잊어버린 개인사유지에 지어진 외딴 저택.

누가 설계했는지는 몰라도 아름다운 고딕 양식의 그 저택은 2000평이나 되는 넓은 정원과 천 개가 넘는 방을 가졌다.

사용인들은 잠들고 싶은 때에 잠들고, 일어나고 싶은 때에 일어나서,각자에게 주어진 역할만 완수하면 됐다.

아무도 그들을 감시하지 않았다.

 

저택에서 일하는 그들은 자신들과 고용 계약을 맺은 주인이 누군지도 몰랐다.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나본 적 없는 주인이, 루피를 개인 메이드로서 지목한 건 사흘 전의 이야기였다.

 

 

 

* * *

 

 

 

만나본 적은 없지만, 루피는 자신의 주인이 나쁜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저택에는 서른 명이 좀 안 되는 사용인들이 살았는데, 죽기 직전까지 피죽 한 번 못 얻어먹고 노동력으로 쓰였거나, 부모와 억지로 떨어져 외국으로 향하던 길에 낙오된 이들이었다.

주인은 어딘가에 버려지고 죽어가던 아이들을 주워 키웠다.

말이 사용인일 뿐 실은 보호자와 피보호자에 가까운 관계였다. 비록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못 보았지만.

 

루피는 일곱 살 무렵 저택에 왔다. 산적에게 붙잡혀 어디론가 팔려가던 도중 배가 난파됐고, 정신을 차려보니 누군가 그를 주워 저택에 데려다놨다.

그때 저택에는 루피 말고는 딱 두 명 밖에 없었다. 열네 살 먹은 로와 아홉 살 상디.

이상하게도 어른은 없이, 가장 나이 많은 로가 저택을 안내해주면 루피가 해야 할 일을 가르쳐줬다.

 

“언제든 네가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 먹고 싶은 건 뭐든지 먹어도 좋아. 검은 다리는 어려도 훌륭한 요리사야.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면 만들어줄 거야.”

 

처음 와 보는 저택인데도 루피는 두려움 없이 물었다. “고기도, 고기도 먹어도 돼?”

 

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응접실 구석에 세워져 있던 빗자루를 루피에게 쥐여주고 메인 홀과 응접실을 잇는 긴 복도를 가리켰다.

 

“대신 넌 매일매일 이 복도를 빗자루로 쓸어야해. 현관부터 응접실까지야. 일을 끝내고 나면, 남은 시간은 자유롭게 보내도 상관 없어.”

 

“청소만 하면, 하루종일 고기 먹어도 돼?”

 

“……네 마음대로 해.”

 

루피는 빗자루질을 하는 것도 잊고 만세! 크게 기뻐하다가 빗자루를 부러뜨리고 말았다. 로는 화를 냈지만, 루피의 키에 맞는 다른 빗자루를 찾아서 다시 건네줬다.

얼른 일을 끝내고 하루종일 고기를 먹었던 날에는 “진짜 고기만 먹는 녀석이 어디 있냐, 멍청아!”라며 고함 질렀다.

그래도 고기를 못 먹게 하지는 않아서, 루피는 로를 좋은 녀석이라고 멋대로 생각했다.

 

아홉 살이 됐을 때는 어머니를 죽인 범죄자의 밑에서 강제 노동을 했다는 나미를 만났다.

사람 말을 하는 신기한 순록-절대 너구리가 아니다-쵸파와, 북극곰 베포도 들어왔다. 펭귄과 샤치는 정원사가 됐다.

로빈은 저택에 가장 늦게 들어왔고 나이도 가장 많았다. 주인은 로빈에게 서재를 정리하고 새로운 장서를 구입하는 일을 맡겼다.

처음에는 말수 적고 영혼 없는 눈으로 세상을 보던 로빈도, 곧 루피에 장난에 장단을 맞춰주었고, 상디가 만든 케이크를 먹으면서 웃게 되었다.

 

루피도 저택의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자주 웃었고, 고기를 양껏 먹을 수 있는 생활은 풍족했지만, 밤이 되어 침대에 홀로 누우면 형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예전에는 비밀 기지에서 다 같이 누워 별을 보다가 잠들었는데. 마지막으로 본 에이스는 산적들에게 제압당해 땅을 굴렀다. 사보는 머리에 큰 흉터가 생길 만큼 얻어맞아서 의식을 잃었었다.

에이스도 피가 많이 났는데, 아마 산적의 칼에 베였던 것 같다.

많이 아팠을 텐데도 에이스는 베인 상처를 내색하지 않으며, 산적의 어깨에 매달린 루피에게 외쳤다.

 

“루피! 울지 말고 기다려! 알지! 착하게 있으면, 형들이 꼭 구하러 갈게!”

 

형들이 떠오르면 루피는 최대한 눈물을 참아보려고 했는데, 대부분의 밤은 잘 안 됐다.

죽은 생선처럼 베개에 얼굴을 묻고 똑바로 누워 있으면 문이 열리고 로가 들어왔다.

그는 익숙하게 루피의 머리 옆에 마른 베개를 두고, 이리 와서 누우라며 손짓했다.

 

“또 울고 있었어?”

 

루피가 돌아누워 로의 베개에 머리를 뉘면, 로는 루피를 꽉 안아줬다.

 

“킁, 토라오, 난 안 울었어. 진짜야.”

 

“복도 끝까지 들렸어. 너 코 훌쩍이는 소리.”

 

“아니야, 그 정도로 울진 않았어.” 결국 루피는 조금은 울긴 했다고 인정했다.

로는 그렇게 루피가 잠들 때까지 곁에 있어주다가, 아침이 밝기 전에 자신의 방으로 사라져서, 전날 밤을 절대로 입에 담지 않았다.

루피가 울었던 일도, 자신이 달래주러 루피의 방에 들어갔던 일도 없었던 것처럼.

 

루피가 나이를 먹어, 형들이 자신을 구하러 오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울어도 상관 없지만, 울지 않는 밤이 올 때까지, 로는 매일 그렇게 루피를 달래주러 왔다.

 

루피는 자신을 몰래 안아주는 로의 품에 파고 들면서, 주인님이 아무리 좋은 사람이더라도 토라오만큼은 아닐 거야, 라고 생각했다.

늘 밤의 복도를 헤치고 오는 로의 가슴에서는 탁 트인 밤공기 같은 냄새가 났다.

루피는 로의 냄새를 맡으며 형들과 함께 올려다봤던 밤하늘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런 로가, 사흘 전, 루피에게 선언했다: “주인님이 널 지명했어. 이제 홀 보이가 아니라 메이드로서 일하게 될 거야.”

 

루피가 되물었다. “뭐라고?”

 

“넌 주인님의 전속 메이드야, 밀짚모자.” 그렇게 말하는 로는 어쩐지 웃고 있었다. “메이드복을 준비해두라고 나미에게 말해뒀어. 좋은 눈요기가 되겠군.”

 

 

 

* * *

 

 

 

“나쁜 자식!” 루피는 메이드캡을 묶어주는 나미를 뒤에 두고 계속 불만을 토로했다. “토라오, 그렇게 안 봤는데 완전 나쁜 놈이었어. 배신자! 주인님의 앞잡이!”

 

“가만히 있어, 루피.” 나미는 메이드캡을 고정하는 하얀 리본을 당겨서 겨우 매듭 지었다. “휴, 네가 부산스럽게 자꾸 움직이니까 3분이나 걸렸잖아! 내 시간은 네 것보다 몇 배는 비싼데.”

 

그건 과장이나 왜곡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루피에게 3분을 줘봤자 빗자루질을 하느라 복도의 물건들을 몽땅 무너뜨리고 부수겠지만, 나미에게 3분을 주면 먼지도 털고 빨래도 하고 침구까지 바꿀 수 있었다.

루피는 금방 기가 죽어 어깨를 움츠렸다.

 

“윽! 미안, 나미. 돈으로 갚을까?”

 

“됐어.” 나미는 메이드캡을 머리에 가지런히 묶고, 레이스가 달린 하얀 칼라와 커프스, 린넨으로 만든 두꺼운 흰 앞치마, 그리고 검은 드레스와 하얀 패티코트까지 완벽하게 차려입은 루피를 한 발짝 떨어져서 봤다.

이렇게 보니 처음 만난 사람이라면, 영락없이 여자로 착각할 법 했다. 나미는 생각했다. 어쩌면 주인님은 루피가 여자라고 오해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아주 어렸을 적에 데려왔으니 착각할 만 하지.

소매와 치마 아래에 숨겨진 단단한 근육을 발견한다면 주인이 놀라 혼절할 수도 있었다. 그녀는 중절모를 쓴 신사가 거품을 물고 까무러치는 모습을 상상하며 킥킥 웃었다.

여장남자 메이드를 두고 싶어하는 변태 주인보다는 이쪽이 훨씬 나았다.

 

“좀 의외긴 해.” 치마가 익숙하지 않아 어기적어기적 걷는 루피를 안내해주며, 나미가 말했다. “내가 보기엔 토라오도 널 꽤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루피는 다리 사이에 바람이 너무 쉽게 들어와 몸서리 쳤다. “전혀 아니야. 그 녀석, 내가 주인님한테 잡혀가는데도 눈요기라느니, 이상한 소리를 했단 말이야.”

 

나미가 이상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좋아하지도 않는데 몇 년 동안 네 방에 들락거릴 리 없잖아.”

 

루피는 깜짝 놀라 나미를 봤다. 얼굴에 열이 쏠리는 게 느껴졌다. “알고 있었어?”

 

“모를 리가 있니? 그렇게 티를 냈는데.” 나미는 마치 레이디를 취급하듯이 직접 문까지 열어줬다. “난 너희가 진작에 첫날밤을 보낸 줄로만 알았지.”

 

루피는 시뻘개진 얼굴이 바닥을 향하도록 숙이고 엉금엉금 계단을 향해 걸었다.

늦가을로 접어드는 11월이었다. 오후 여섯 시였고, 아직은 창밖이 밝지만, 삼십 분에서 한 시간 정도가 지나면 땅거미가 질 예정이었다.

로는 날이 완전히 저물기 전까지 지하실로 이어지는 계단에 오라고 명령했다.

 

나미는 어린 동생을 첫 심부름 보내는 것처럼 계단까지 따라가려고 했다. 그녀의 손에는 기름으로 밝히는 등불이 들려 있었다.

 

“루피.” 계단을 코앞에 두고 나미가 불렀다. “정말 괜찮겠어?” 그녀는 루피에게 등불을 내주고 싶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

루피는 손을 먼저 내밀어, 나미의 하얗고 섬세한 레이스처럼 아름다운 손을 쓸더니, 자연스럽게 등불을 가져갔다.

나미는 예쁜 이마에 주름이 지도록 낯을 일그러뜨렸다.

 

“왜 그래, 나미. 영영 헤어지는 것도 아닌데.” 정말로 그럴지는, 아직 아무도 몰랐다.

루피는 주인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믿었고, 로가 자신을 사지에 내몰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오늘 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몰랐다.

 

“루피, 만약 주인님에게 끔찍한 일을 당할 것 같다면 도망쳐. 같이 도망치자.”

나미는 멀어져가는 루피에게 필사적으로 말했다. “이 저택은 살기 좋고, 안락하지만, 네 희생 위에 머무르고 싶진 않아. 상디와 로빈과, 쵸파에게도 함께 도망치자고 할 테니까.” 루피는 웃으며 나미에게 손을 흔들었다.

“꼭이야, 루피!”

 

걱정 많은 나미를 뒤로 하고 계단을 반쯤 내려가자, 층계참에 로가 서 있었다. 그는 오래된 이야기에 나오는 비밀 결사처럼 검은 로브를 둘러 입었다.

 

“그 옷 뭐야, 토라오. 사이비 종교 같아!”

 

“옷에 먼지가 묻는 걸 막기 위해서 입은 거야.”

 

로의 코끝이 꿈틀거렸는데, 그건 신경이 거슬리지만 동시에 좀 웃기다는 의미였다. 루피는 고양이처럼 코를 움찔거리는 로를 보자 긴장이 풀려버려서, 히히히, 소리 내어 웃었다.

로는 웃지 않았지만 그의 표정도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 어둠 속에 친숙하게 녹아드는 금색 시선이 루피의 치마 차림을, 치마 아래로 드러나는 종아리를 잠시 훑었다.

로는 해맑게 가까워지는 루피의 손을 끌고 마저 계단을 내려갔다. 루피는 더 장난을 걸려다가 자기도 모르게 입을 꾹 다물었다.

 

저택의 지하에는 와인 저장고와 보일러실을 뒀다. 둘 다 루피가 잘 드나들지 않는 장소였다. 조금만 숨을 들이마셔도 빽빽한 먼지 탓에 코가 가려워졌다.

로는 빠른 걸음으로 루피를 데리고 와인 저장고 방향으로 향했다. 주인님을 맞이해서 좋은 와인으로 미리 골라두려는 걸까? 루피는 술을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별로 기대가 안 됐다.

로는 거침없이 저장고를 빽빽하게 채운 오크통 몇 개를 들어 바닥에 나란히 내려뒀다. 뭘 하는지 몰라 루피가 가만히 보고 있으니 고갯짓까지 하며,

 

“이봐. 너도 도와서 내려.”라며 명령했다. 명령 받는 건 기분 나빴지만, 아무튼 루피는 로의 말대로 함께 오크통을 내렸다.

톡 쏘는 와인과 훈연한 오크 나무의 냄새가 사위를 꽉 채웠는데, 루피가 맡기엔 지독하기만 해서 어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는 탁 트인 맑은 공기의 냄새, 형들과 함께 맡았던 밤하늘의 냄새, 로의 가슴팍과 같은 냄새를 사랑했다.

조금만 들이마셔도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탓에 간신히 숨을 참고 있는 와중에, 로의 손이 빠르게 다가오더니 루피의 콧대를 탁 쳤다.

 

“뭐야!” 루피는 반사적으로 짜증을 냈다. 로도 만만치 않은 표정이었다.

 

“집중 안 하지. 설명했잖아.” 하나하나 다른 문신을 한 다섯손가락이 넓게 펼쳐지더니, 오크통들을 물리치고 나타난 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문이 있었다.

 

돌벽 사이에, 명백하게 열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경첩이 연결된 나무 문이. 아주 키가 큰 문이었다.

루피보다 키가 큰 상디도, 상디보다 머리가 높은 로도, 인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큰 북극곰 베포도 쉽게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로는 가볍게 문을 두드렸는데, 아주 오래 전에 만들어진 것인지 부패한 목재가 흔들리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났다. 로는 멈추지 않고 바지 뒷주머니에서 아주 작은 무언가를 꺼냈다. 열쇠였다.

본래는 황금빛에 가까웠겠지만, 세월에 쓸려나가 이제는 놋색에 더 가깝게 보이는 아주 작은 열쇠. 손잡이 부분에는 가는 실이 연결돼 있어 목에 걸 수도 있는 열쇠.

로의 커다란 손에 가려져 열쇠는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는 마찬가지로 오랜 세월에 걸쳐 변색된 문고리에 열쇠를 넣더니, 집중하라는 듯이 검지를 세우고 말했다.

 

“이번에야 말로 잘 들어. 우린 지금부터 숨겨진 지하로 들어갈 거다.”

 

루피는 금세 눈을 빛냈다. “숨겨진 지하?!”

 

로는 루피의 말이 더 이어지기 전에 재빨리 끊었다.

“미리 말하지만, 이건 모험이 아니야. 숨겨진 지하에는 방이 하나밖에 없고, 바로 주인님의 방이지. 주인님은 번잡스러운 걸 싫어하신다. 네가 뒤져볼 만한 물건은 없을 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숨겨진 장소에 들어간다는 즐거움은 이미 루피에게 눌러붙어 떠나지 않았다.

루피는 이제 음률을 붙여서 “숨겨진 지하는~ 습하다네~”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로는 루피의 태도를 더 지적하지 않았다. “노래 부르는 건 상관 없지만, 네가 기억해둬야 할 사항이 몇 개 있어.”

그리고 그는 드물게 루피가 노래를 다 끝낼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어 말했다. “이걸 지키지 않는다면 네 목숨을 보장할 수 없어.”

 

그제야 루피도 심각성을 알아 듣고 노래와 함께하던 의문 모를 춤을 멈췄다. 로의 굵은 목에 튀어나온 잘생긴 목젖이 꿀꺽 움직이는 게 보였다.

로가 가끔 루피에게 일부러 못되게 굴 때는 있었지만, 평소의 그는 전혀 무게를 잡는 남자도 아니고, 불필요한 공포를 조성하지도 않았다.

로가 주의하라고 말하는 일에는 전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한 번, 루피가 아직 열다섯 살이었을 때, 로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조항을 어긴 적이 있었는데, 로와 다른 사용인들은 진심으로 루피가 죽은 줄로만 알았다.

어떻게든 살아남은 데에는 특유의 행운이 작용한 게 틀림 없었다.

그러나 두 번이나 강력한 행운을 기대하기는, 아무리 루피라도 힘들 것이다.

 

루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게 뭔데?”

 

로는 문고리에 쑤셔넣은 열쇠를 돌렸다. “지키겠다고 먼저 말해.”

 

“뭐야, 어차피 안 지키면 죽는다면서. 먼저 말해줘도 되잖아.”

 

“아니.” 로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지키겠다고 맹세하지 않으면 말해줄 수 없어.”

 

이 녀석 짜증나네, 루피는 생각했다. 애초에 날 전속 메이드로 지목한 건 주인님이고, 날 여기로 데려온 건 너잖아. 나는 이런 지하실은 처음부터 안 오고 싶었다고!

그렇게 말할 수도 있었지만, 모처럼 마주한 로의 진중한 눈빛이, 어쩔 수 없이 “네.”라고 말하기를 강요했다.

루피는 메이드캡이 걸쳐진 짧은 뒷머리를 대충 만졌다. “알겠어.” 그가 대강 대답했다. “맹세할게! 무슨 내용이든 지키겠다고. 자, 이제 말해봐. 대체 뭔데 그래?”

두꺼운 문이 육중하게 밀리는 소리가 났다. “좋아.” 로는 문고리에서 열쇠를 빼내더니, 루피에게로 다가가, 루피의 목에 열쇠에 달린 실을 걸어주었다.

로의 키가 그보다 훨씬 컸기 때문에 눈앞에는 너른 가슴이 보였고, 특유의 상쾌한 냄새가 훅 끼쳤다.

루피는 숨을 들이마시다가 멈췄다. 얼굴이 또 빨개지려고 했다.

 

“첫 번째, ‘숨겨진 지하’에는 해가 진 후에 들어가고, 해가 뜨기 전에 나올 것.” 로의 손가락이 루피의 목덜미에 사뿐히 닿았다.

“두 번째, 절대 지하 안에서 불을 켜지 말 것.” 루피의 어깨와, 팔을 타고 내려온 손이 등불을 빼앗아갔다. 로의 손이 닿는 곳마다 소름이 돋고 이상해서, 루피는 가져가지 말라며 저항하지도 못했다.

“세 번째.” 로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숨이 많이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절대 주인님의 얼굴을 보지 말 것.”

 

로가 낮은 소리가 큭큭 웃더니 얼어붙은 루피의 등을 열린 문 안으로 떠밀었다. “아무리 너라도 이 정도는 지킬 수 있겠지. 내일 봐, 밀짚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