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Text:
등이 퍽, 하고 밀렸다. 옆으로 웅크린 채 자고 있던 아키가 퍼뜩 눈을 떴다. 아직 흐린 시야 속에서 왜 몸이 밀린 건지 멍하니 추측하는데, 또다시 등에 충격이 일었다. 퍽, 퍽. 짐승이 다가와 몸을 부딪치는 듯한 둔하고 뭉툭한 충격이었다.
결국 아키는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뻑뻑한 눈으로 시계를 찾았다. 새벽 3시 41분. 아키가 눈을 붙였던 건 1시가 조금 지났을 무렵이었다. 교대 시간이라기엔 조금 일렀는데, 또다시 짧고 무딘 충격이 등을 강타했다.
“아, 좀……!”
짜증을 내며 몸을 돌리자, 샛노란 정수리가 보였다. 덴지였다. 아키는 아까부터 등을 밀던 충격이 덴지가 머리로 자신을 밀어냈기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 짐승 같다고 생각했는데 실로 짐승의 그것이었다. 아키는 한숨을 쉬며 손을 들어 덴지의 머리에 얹었다.
“그만해라.”
덴지는 반응하지 않았다. 볼멘소리 하나 없었다. 뭔가 잘못됐나 싶었던 순간, 덴지의 몸이 옆으로 픽 쓰러졌다.
“졸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 심정을 모르는 바도 아니었다.
아키는 건너편 방의 낌새를 살폈다. 아직 별일은 없는지 사위가 고요했다. 한 뼘쯤 열린 방문 너머는 낮은 조도의 오렌지빛 조명으로 물들어 있었다. 파워가 어둠을 견디지 못하는 바람에 얼마 전 아키가 사온 보조등의 불빛이었다. 아키가 잠시 눈을 붙인 거실도 예외는 아니라서, 부엌의 조명을 밤새 켜 두고 있었다.
부엌에서 비치는 푸르스름한 형광등 빛을 등지고, 아키는 다시 베개 위에 머리를 얹었다. 파워를 살피러 가야 했지만 졸음기가 빠지지 않아 몸이 몹시 무거웠다. 이십 분, 더도 덜도 말고 딱 이십 분만. 그렇게 중얼거리며 아키는 쓰러진 덴지 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덴지에게선 벌써 고른 숨소리가 났다. 아키는 혀를 차면서도 제 몸을 둘렀던 이불을 조금 끌어당겨 덴지 위에도 덮어 주었다.
지옥에서 간신히 생환한 이후로, 파워는 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눈을 감은 순간 눈꺼풀 안쪽에 스미는 어둠마저도 두려워 어쩔 줄 몰라 했다.
아키는 팔의 접합수술 관계로 병원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퇴원한 뒤에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렸다. 입원한 동안 덴지와 연락을 주고받긴 했지만, 덴지의 말주변으로는 파워의 상태를 정확히 전달하는 게 쉽지 않았던 탓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가 녀석답지 않게 종종 지친 기색이기는 했는데, 그즈음에는 아키도 여러 차례에 걸친 수술의 관리며 회복이 힘에 겨워서 거기까지 신경 쓸 기력이 없었다.
팔의 접합은 수술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신경과 혈관이 제대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손끝에 상처를 내고 흐르는 물에 적셔 피가 멈추지 않게 해야만 했다. 통증으로 잠들지 못하는 밤마다 아키는 썩어드는 건지 회복되는 건지 알 수 없는 검붉은 상흔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그러면서 설령 팔이 붙더라도 이전의 기능을 백 퍼센트 되찾기는 어려울 거라던 의사의 말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고도 결국 한쪽 팔은 제대로 붙지 못하고 괴사되고 말았다. 왼팔을 포기하라는 선고를 들은 날, 아키는 울지도 못했다. 단지 이대로 남아 있는 팔까지 끝장날지 모른다는 더 큰 두려움에 짓눌렸을 뿐.
세 번째 수술을 마친 뒤 아키의 기력은 한계까지 떨어졌다. 환자복의 왼쪽 소매는 다시 허전하게 비었고,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생산적인 사고가 힘들었다. 그 무렵 아키의 식사량은 무섭도록 줄어 있었다. 의료진이 회복을 위해 식사량을 늘리라고 조언했음에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직 젊은 아키를 안쓰럽게 여긴 간병 보조인이 여러 번 간곡한 위로를 건네 왔음에도 아키는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귀에 닿는 모든 음절이 마른 모래처럼 부스러져 귓바퀴 언저리에서 흩어졌다.
덴지에게 다시 연락이 온 건 마침 그때였다. 당연하지만 아키는 스스로 수화기를 들 수 없는 상태였다. 간병 보조인이 귀에 대 주는 수화기 쪽으로 힘겹게 고개를 기울였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키, 집에 오려면 멀었어? 파워가 말야, 상태가 무진~장 안 좋아서 병문안도 못 가겠는데, 슬슬 나도 한계인 것 같아서 말야…….’ 그 말에 아키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시 떨어져나간 왼팔을 확인했을 때와 비슷한 것도 같았지만, 막상 건드려 보면 명백히 다른 감각이었다. 얼어붙은 강 아래로 잠겨들어 있던 몸이, 느닷없이 튀긴 불똥에 깜짝 놀란 것처럼.
이전의 명랑함을 완전히 잃은 건 아니었으나, 그렇기에 더욱 불안함을 일으키는 그 말이 아키 안에 죽은 듯 엎드려 있던 무언가를 건드렸다. 아키는 숨을 들이켰다. 당장의 고통에 허우적거리면서도 아직 아키는 아키로써 기능할 수 있었다. 스스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키는 침착한 목소리로 파워의 상태가 그렇게 좋지 않냐고 물었다.
‘어어~ 나 혼자선 밥도 잘 못 먹이겠고, 잠도 못 자겠어.’ 덴지가 답지 않게 한숨을 푹 내쉬며 대꾸했다. 아키는 마르고 갈라진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무언가 치미는 것을 삼키며 고개를 숙이자, 간병 보조인이 아키를 걱정스러운 듯 내려다보았다. 아키는 가까스로 말을 이었다.
‘……곧 돌아갈 테니까, 조금만 더 버텨 봐.’ 말을 끝맺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에서 괴성이 들리면서 전화가 뚝, 끊겼다. 아키는 핏발이 선 눈을 질끈 감았다. 산란한 어둠 속에서 아키가 더듬을 수 있는 건 단 하나뿐이었다. 어른거리며 떠오르는 두 사람의 얼굴.
조심스럽게 수화기를 거두는 간병 보조인에게, 아키는 물렸던 식사를 다시 가져와 줄 수 있겠냐고 청했다. 그날부터 아키는 식판을 어떻게든 깨끗이 비웠다. 밥알이 모래알같다 못해 구역질을 하면서도, 할당받은 노역에 임하는 사람처럼 필사적으로 음식을 씹어 목 너머로 삼켰다.
두 번 정도 미뤄졌던 퇴원이 마침내 성사된 날, 아키는 홀몸으로 병원을 나와 집으로 갔다. 그런 아키를 맞이한 것은, 엉망진창이 된 집안 풍경이었다.
아키가 가장 처음 목격한 건 어수선한 거실 가운데 파워가 울고 있는 광경이었다. 문을 열어준 사람은 덴지였는데, 아키는 덴지의 눈 아래에 그토록 짙은 그늘이 드리워진 걸 처음 보았다. 다음 순간 파워가 울부짖으며 내던진 쿠션이 아키의 얼굴에 명중했다. 아키의 오른쪽 어깨에 위태롭게 걸려 있던 보스턴백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아키는 놀라지 않았다. 한숨을 쉬지도 않았다. 각오는 진작에 마쳤다. 파워를 진압할 기운도 없는 듯한 덴지에게, 아키는 일단 제 오른팔 소매부터 걷어붙여 달라고 했다. 그리고 앞치마도 매어 달라고.
팔랑거리는 왼쪽 소매를 힐끗 보더니, 덴지는 군말없이 다가와 아키의 소매를 차곡차곡 접었다. 이어 앞치마를 목에 걸어주고, 아키의 허리를 붙잡고 돌려세워 뒤로 어설픈 리본 매듭을 지었다.
그로부터 몇 주.
세 사람은 여전히 어둠과 지난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전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아키가 병원에 있을 때보다는 덜 외로웠다.
아키는 설핏 눈을 떴다. 하나 남은 손으로 더듬더듬 바닥을 짚어 상체를 일으켰다. 창밖이 아까보다 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다. 웬일로 파워가 잠든 침실이 아직껏 고요했다. 하기는 안 자고 버티는 것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날이 밝고 있다는 건 좋은 징조였다. 파워는 밤보다 낮에 덜 불안해했으니까. 그러나 아키는 더 자려고는 하지 않았다. 눈꺼풀은 여전히 무거웠으나, 가능하다면 고요 속에서 아침이 오는 걸 지켜보고 싶었다.
하지만 파워가 날뛰지 않는 밤이라도 뜻대로 되지 않는 날이 있었다.
“으으…….”
옆에서 앓는 소리가 들려, 아키는 불현듯 고개를 돌렸다. 덴지가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더니 춥다고 중얼거렸다.
“…….”
둘이 덮고 있는 이불이 하나뿐이라 아키가 몸을 일으키자 찬바람이 들었던 모양이다. 아키는 한숨을 쉬며 덴지의 이불을 다독이려 했다. 그런데.
아키의 손이 덴지 위로 뻗은 순간, 덴지가 두 눈을 번쩍 떴다.
저도 모르게 헉 소리가 날 뻔한 것을 삼키는데, 덴지가 눈을 끔뻑이더니 부스스 일어났다. 아직 정신이 덜 들었는지 그늘진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다 아키를 발견하고는 딱 멈췄다. 어쩐지 심상찮은 기색에 아키는 마른침을 삼켰고, 덴지는 아무 말도 없이 아키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대뜸 아키에게서 이불을 확 뺏고는.
제 베개 대신 아키의 허벅지 위로 머리를 두고 쓰러졌다.
“너, 뭐 하자는…….”
기가 차서 아키가 중얼거렸다. 덴지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후 허리에 매달리듯 감기는 팔이 느껴졌다. 할 말이 없어서 아키는 잠자코 덴지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고 숨을 헐떡이는 파워를 돌보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전우애 비슷한 것이 싹텄다. 실제로 목숨이 오가는 전투를 벌였을 때에는 오히려 미미했던 감정이었다. 파워가 집어던진 것들을 묵묵히 치우고, 훌쩍이는 녀석을 함께 토닥이며 달래고, 교대로 밤잠을 자는 매 순간마다 잠깐에 불과하던 유대감은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두터워졌다.
아키는 가만히 몸을 수그렸다. 덴지의 목덜미에서 올라오는, 체온의 미지근한 열기가 느껴졌다.
“……아키.”
덴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수면부족 탓에 갈라진 목소리.
“왜.”
아키의 음성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파워, 안 깼어?”
“안 깼어.”
“계속 자?”
“글쎄…… 운이 좋으면 그럴지도.”
허리에 감긴 팔의 힘이 강해지더니, 덴지가 아키의 배에 얼굴을 묻었다. 답지 않게 한숨이라도 쉬었는지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아키.”
“왜, 또.”
“……할래?”
덴지의 머리카락을 빗어넘기던 손이 멈췄다. 아키가 대답을 망설이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도, 덴지의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고 싶냐?”
“할 수 있을 때 하면 좋잖아…….”
“그러다 저 녀석이 깨면.”
“그땐 못하는 거지 뭐…….”
그 맥없는 대답에, 아키는 도리어 웃고 말았다. 잠시 뻣뻣해졌던 어깨가 도로 부드러워졌다.
“……방으로 가자.”
“어? 해도 돼?”
내내 아키의 배에 얼굴을 묻고 웅얼거리던 덴지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언제 잠에 취해 있었냐는 듯 눈빛이 또렷해졌다. 실소를 깨물며 아키는 짐짓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목소리 높이지 마. 파워가 깬다.”
“어, 알겠어, 미안 미안.”
“그리고 안에는 못 넣어. 준비할 시간도 여유도 없으니까.”
“에, 그럼 대신 혀로 낼름낼름 해줘.”
이 뻔뻔한 자식이. 응석부리는 태도에 잊고 있었던 미진한 짜증이 올라왔지만 아키는 내색하지 않았다. 천성이 그런 녀석을 상대로 화를 내 봤자 저만 손해다.
“……봐서.”
“앗싸.”
분명 ‘봐서’라고 했는데, 해 주겠다는 확답이라도 들은 듯 덴지의 얼굴은 의기양양했다.
입술이 여러 번 닿았다 떨어졌다. 요즘 아키는 덴지가 주제넘게 키스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실감할 때가 많았다. 주제넘게, 라고 말하면 좀 미안하긴 하지만, 키스한 직후 바보같이 풀린 얼굴을 보면 그런 감상이 들고 마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본격적으로 하진 않을 거라고 여러 번 말했음에도 덴지는 서슴없이 아키의 옷을 벗겼다. 날이 채 밝지 않아 방안은 어슴푸레했지만, 그 정도의 조도로도 아키의 몸에 새겨진 상흔은 여실히 드러났다. 바탕이 흰 편이라 더욱 도드라지는 숱한 흉터들. 희미하기도 선명하기도 한 곳곳의 찰과상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봉합의 흔적.
그리고 어깨 아래로 사라진 왼팔.
덴지의 손은 아까부터 아키의 왼쪽 허리를 붙들고 있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지시한 것도 아니었는데, 아키의 중심이 불안정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쪽을 지탱하고 있는 거였다.
잠시 내려다본 덴지의 눈이 너무도 노골적인 욕정에 번들거리고 있어 아키는 그만 헛웃음을 흘릴 뻔했다. 일상적으로 살을 부대끼고 살다 보니 의식하지 못할 때가 많았는데, 이 녀석은 정말이지 한창때의 왕성한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키는 서늘한 무언가가 몸 안의 중심을 얼어붙게 하는 것을 느꼈다.
“너는…….”
중얼거리는 아키의 목소리가 까슬했다. 얼핏 듣기엔 애매하게 자극된 욕망 탓에 목소리가 갈라진 것 같았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들으면 그와는 전혀 딴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찬기운이 기저에 깔려 있었다.
속에서부터 바작바작 얼음이 얼어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분노와는 달랐다. 내뱉으면 후회할 걸 알면서도 혀가 기어이 빈정거림을 빚어내고 말 때의 자포자기. 씁쓸함.
하지만 아키의 혀가 차디찬 독을 품으려 했을 때.
“아키, 역시 입으로 해 줘.”
덴지가 지독히도 뻔뻔스럽게 요구하는 바람에.
“뭐……?”
“한 번만 해줘, 넣지도 못하게 하면서 입으로도 못 하게 하는 건 억울하잖아~~.”
그 바보스러운 욕망의 질량에 밀려, 아키의 악심은 형태를 갖추기도 전에 어처구니없이 잦아들었다.
혀에 남은 욕망의 뒷맛을 지우고 싶어서 아키는 담배를 떠올렸다. 그러나 하나 남은 손으로는 스스로 담배에 불을 붙일 수도 없었다.
가망이 없다면 포기는 이를수록 낫다. 적어도 이 건에 한해서는 그럴 테다. 아키는 빠르게 미련을 접었다. 그리고 시계를 찾았다.
이제는 파워가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시각이었다. 오늘따라 파워가 자는 시간이 짧지 않은 점이 문득 아키의 신경을 건드렸다. 설마 잠든 게 아니라 울다 지쳐서 기절했던 건 아니겠지. 하지만 그렇게라도 잠드는 게 파워에겐 나을 수도 있었다. 굳이 깨우지는 말고 아침이나 준비하자.
방안은 이제 조명 없이도 충분히 사방을 구별할 수 있을 만큼 밝았다. 아키는 발목에 걸려 있던 속옷을 발길질로 대강 떨쳐냈다. 샤워를 해야만 했다. 신경을 쓰기나 할지는 의문이지만, 파워는 코가 예리하니까.
몸을 일으켜 팔다리에 엉긴 이불을 걷어내면서, 아키는 그저 지나가는 말처럼 입을 열었다.
“너는 이런 몸을 보고도 용케 하고 싶어하네.”
아무렇지 않게 던졌으나, 이불을 잡아당기는 오른손의 미약한 떨림을 아키는 무시하지 못했다. 사실 덴지가 좀 전에 아키의 말을 가로막지 않았더라면 칼날을 실은 채 내뱉었을 게 분명한 말이었다. 그게 애먼 화풀이라는 사실을 모르지도 않으면서.
“엉? 뭔 소리야?”
덴지는 아직 이불 속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냐…….”
아키가 침대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아, 이제 팔이 하나 없어서?”
덴지가 태평스럽게 물었다. 거짓말처럼, 아키는 그 자리에 우뚝 멈췄다.
저 녀석의 상식선이 보통 사람과 몹시 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모두가 한껏 기피하고 최대한 에두르며, 가급적 입에 올리지 않으려던 표현이 직설적으로 떨어지자 심장이 철렁했다.
아키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대로 못 들은 척 마저 침대를 벗어나지도 못했다. 시트를 움켜쥔 손이 필요 이상의 악력을 내고 있었다. 차라리 이 손으로 저 녀석의 얼굴을 보기 좋게 후려칠까, 생각했다.
물론 그건 명백하게 꼴사나운 짓이었다. 자조하듯 입에 칼을 품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꼴사나운 짓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실제로 후려치진 않더라도, 최소한 발치에 굴러다니는 속옷 따위를 그대로 덴지에게 내던질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키는 결국 개중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덴지가 아키를 끌어당겨 침대 위에 도로 쓰러뜨린 덕분이었다.
“아직 파워코 안 일어났잖아~.”
사람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덴지는 응석부리는 짐승처럼 머리를 부볐다.
“……아침은 먹어야 할 거 아냐…….”
“그것도 어차피 내가 도와줘야 하는 거 아냐~?”
“…….”
아키가 입을 다물자, 덴지는 혼자 나지막한 톤으로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예전에 말야, 야쿠자 놈들이 빚 갚으라고 협박하면서, 내 몸에 있는 거라도 팔라고 난리를 쳐서 떼다 팔 수 있는 건 다 떼서 팔아봤거든?”
“…….”
“눈은, 뭐, 적응하느라 고생 좀 하긴 했는데 그러고 난 뒤엔 괜찮았고, 신장인가, 그건 처음부터 뭐 하는 건지도 몰랐으니까 상관없었는데, 역시 불알이 한쪽 없어진 뒤로는 여자랑 그거 할 때 분위기 식을까 봐 기분이 더럽더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그냥, 난 그랬었다고.”
짧은 적막이 찾아왔다. 아키의 몸에 감긴 팔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빈말로도 좋은 기분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몸에 닿은 것들은 포근했다. 아키는 눈을 감았다. 덴지도 히메노 선배처럼 안대를 쓰고 다녔을까.
“……내가 여전히 불알 한쪽 없었으면 하야카와 선배는 나랑 못 했을 것 같아?”
“……안 해봐서 모르겠다고 한다면?”
“뭐야, 난 아키 팔이 두 짝이든 한 짝이든 했잖아.”
“그건 네 하반신이 어쨌든 넣을 수만 있으면 분별없이 서서 그런 거잖아.”
“에엥. 그거 내가 나쁜 놈이란 소리? 그보다 꼭 그렇지도 않거든?”
그걸 어떻게 아냐고 대꾸하려던 찰나, 방문 너머에서 덴지의 이름을 부르며 파워가 울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은 너나할 것 없이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덴지가 아키의 머리 위에 스웨트 셔츠를 뒤집어씌우고, 자기도 얼른 옷을 주워 팔다리에 꿰었다. 속옷을 걸칠 여유도 없어서 아키는 한 팔로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맨다리 위에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자잘한 건 파워를 진정시킨 뒤로 미루자.
먼저 옷을 입은 덴지가 부리나케 방을 빠져나갔다. “파워코, 여깄어, 우리 여깄다고!” 쩔쩔매며 멀어지는 뒷모습이 우스웠고, 어쩐지 십 년쯤은 본 것처럼 정다웠다. 아키는 퍽 기묘하다고 생각했다. 저 녀석이 집에 들어앉은 건 순전히 사고에 가까웠고 심지어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는데도.
하지만 어쩌면, 늦든 빠르든 결국은 이렇게 되고 말 관계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주 잠깐이었으나 아키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키는 두 사람이 맺은 관계가 팔을 잃기 전보다 오히려 잃은 후에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꼭 무언가를 증명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어쨌든, 아키의 머리 한편은 언제나 그 사실을 주지하고 있었다.
겹쳐진 몸과 몸이 가장 뜨거울 때조차도.
몸을 일으켜 방을 나오기 직전, 아키는 덴지가 던졌던 말을 상기했다.
불알 한쪽 없는 자기랑은 못 했을 것 같냐고.
하, 하고 아키는 실소를 흘렸다.
겨우 그런 걸로 징그러워하기엔 아키는 덴지의 못 볼 꼴을 너무 많이 봤다. 몸이 둘로 쪼개진 꼴을 목격한 것만 해도 대체 몇 번인지. 이젠 오히려 뭘 봐도 익숙해질까 봐 무서울 지경이었다.
레벨이야 다르지만 뭐, 저 녀석도 대충 비슷한 심정이겠지.
아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이제 자신을 부르며 흐느끼고 있는 파워를 달래러 나갔다. / F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