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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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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2026-01-19
Words:
1,698
Chapters: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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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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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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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저 위 끝까지 닿을 수 있는지

Summary:

2024.08.15에 투고했던 글입니다.

Notes:

글이 두서가 없을 수도 있어요. 왜냐면 제가 신경질적이고 제멋대로인 곽봉효를 좋아해서..

Work Text:

"그때 우셨다면서요."

"봉효."

"조인 장군이 다 말해줬습니다."

 

조맹덕은 문간에 어깨를 기대고 비뚜름히 서 있는 곽봉효를 바라보았다. 눈밑이 어둡고 안구는 충혈된 모습을 보니 날밤을 꼴딱 샌 모양이었다.  

 

"말해준 것이 아니라 네가 말하도록 만들었겠지."

 

피곤하고 신경질적인 얼굴을 한 곽봉효는 조맹덕의 추궁에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붉은 살덩이가 고센 입질에 볼품없이 짓눌려 핏기를 잃었다. 쯧, 다 갈라지고 터진 걸 겨우 고쳐놨더니만. 조맹덕은 속으로 곽봉효의 몹쓸 습관을 가볍게 나무라며 쥐고 있던 술잔을 내려두었다. 저런 몰골을 한 놈을 앞에 두고는 있던 술맛도 다 사라지는 기분이다. 술잔 끝에 맺혀 있던 물방울이 책상 위로 한 줄기 흘러내렸다. 잠시 말을 않던 곽봉효의 검은 눈동자가 파르르 흔들리더니 초점을 잡고 조맹덕을 일시에 노려봤다. 그늘진 실내였으나 번들거리는 안광은 가려지지 않았다. 

 

"그렇게나 잘 아시는 분이 왜 숨기셨답니까? 뻔히 드러날 걸 아시면서."

"너도 뻔히 알고 있으면서 굳이 찾아와 묻는 것 아니냐."

"피차일반이라...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

 

곽봉효는 조맹덕의 말에 빈정거리는 투로 대꾸하며 눈을 흘겼다. 금으로 된 의관을 머리에 고정하고 붉은 비단 호복을 걸친 남자가 시야에 걸렸다. 곽봉효와 시선을 마주친 조맹덕이 이리와 앉으라는 듯 제 무릎 위를 탁탁 두드렸다. 곽봉효는 순순히 가 앉는 대신 저를 부르는 손짓을 무시하고 기름을 충분히 먹여 반질거리는 바닥을 발끝으로 문지르기만 했다. 자줏빛을 띄는 검은 목재는 곱게 사포질되어 발끝에 걸리는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하기야 천자 옆에서 칼을 차고 돌아다니는 인간의 처소인데 모든 것이 황제의 것과 격이 같든 그보다 높든 해야 할 것 아닌가. 곽봉효는 새삼 우스운 마음이 들어 낄낄 웃었다.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는 곽봉효를 조맹덕은 익숙하다는 양 감흥 없는 얼굴로 지켜봤다.

 

"그래, 무엇으로 겁박했길래 그놈이 술술 불던가?"

"별것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숨기고 싶은 비밀이 한두 개 쯤 있는 법이고, 저는 그걸 살짝 건드렸을 뿐입니다."

"내게 그걸 말해줄 의향은 있고?"

"받들어 모시는 분의 품행을 본받아 말하지 않으려고요."

 

이것 보게. 웃음기가 남아 있는 얼굴로 실컷 이죽대는 곽봉효를 바라보며 조맹덕이 헛웃음을 흘렸다.

 

"마음대로 해라. 내가 실로 궁금한 건 자효 그 녀석이 한 말이니."

"그거야 뭐, 말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만."

"다만?"

"사공의 기분이 상할까 염려되어 말하기 싫습니다."

 

조맹덕은 눈을 가늘게 뜨고 곽봉효를 바라보았다. 해를 등지고 선 곽봉효의 얼굴은 어둠에 일부 가려졌으나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다. 곽봉효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참지 못한 웃음이 비죽비죽 새어나왔다. 참지 못했다기보단 참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알맞을 것이다. 

조맹덕에게 막무가내인 곽봉효의 행동을 말릴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곽봉효는 아주 잘 알았다. 그는 제 주인의 편애를 때에 맞게 잘 활용했으며 보통은 그 수가 영악했다. 오늘처럼 예고도 없이 사적인 곳에 방문한 전적이 벌써 수십차례다. 그리고 이토록 조롱의 의미가 명백한 비소를 흘리는 행동도 주인과 신하 간에는 금기였으나 곽봉효는 개의치 않았다. 이렇듯 곽봉효는 자유분방한 인간상이었고 조맹덕은 그러한 면목을 마음껏 내비치도록 허락하는 이였으니 그의 책사가 짓궂은 성질머리를 굳이 숨길 필요는 없었다. 조맹덕은 허리를 구부리고 큭큭 웃는 곽봉효를 바라보며 내려두었던 술잔을 입가에 가져다 댔다. 

 

"천하의 조맹덕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 이라고 잘도 불더군요."

"입단속 좀 해야겠군."

"제 입을 단속하지는 않으시고요?"

"해봤자 말을 들어먹지도 않는데 단속은 무슨. 이 주둥아리는 닫아두면 손해라 건들지 않는 게 상책이다."

"남의 입을 아주 복주머니 취급하십니다."

"흉복이 혼재하는데 무슨 복주머니라고. 내가 보기에는 무엇이 튀어나올지 가늠도 안 되는 요술단지 쯤 된다."

"제대로 파악하셨습니다."

 

곽봉효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양 손바닥을 맞부딪혀 짝 소리를 내었다. 술잔에 남은 술을 털어마신 조맹덕이 곽봉효에게 물었다.

 

"기분 상하는 일이라도 있었느냐?"

"예, 근데 사공이 냇물에 벅벅 씻긴 배춧잎처럼 시들시들해진 꼴을 보니 좀 나아졌습니다."

"오냐, 나아진 게 그 모양이란 말이지."

 

조맹덕은 심드렁하게 말하고서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에게는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들었는지 잔뜩 가시 돋친 티를 내는 제 사람의 기분을 풀어줄 의무가 있었다. 어깨를 쫙 펼친 조맹덕은 불량한 자세로 문간에 기대어 있는 곽봉효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서 살펴보니 더욱 초췌한 안색을 뽐낸다. 옆에 끼고 살다 며칠 소홀했다고 금세 이리 상하다니, 아침에 펴서 밤에 지는 나팔꽃도 이놈 앞에서는 꼬리를 내빼겠군. 조맹덕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혀를 차며 곽봉효를 빤히 들여다본다.

 

"뭘 그리 보십니까?"

"네 이름이 실은 견우牽牛가 아닌가 싶어서 이런다."

"예?"

 

곽봉효는 의구스런 눈길로 조맹덕과 그 뒤의 술잔이 올려진 탁상을 번갈아본다. 혹시나 취기가 돌았는지 의심하는 눈빛이다.  

 

"봉효, 난 멀쩡하니 괜한 의심 그만 둬라."

"사공은 참 별 소리를 다 하십니다."

"너만 할까."

"저는 원래부터가 그런 역할이고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뻔뻔한 말투로 대꾸하는 곽봉효를 두고 조맹덕은 대청 밖으로 발을 뻗었다. 신발을 꿰어 신는 그를 곽봉효가 빤히 바라보며 묻는다.

 

"어디 가십니까?"

"환기에는 산책이 제격이다."

"갔다 오십시오. 전 안 갑니다."

 

곽봉효는 조맹덕을 향해 귀찮다는 듯 두어번 손을 내저었다. 뺀질나게 주인의 뒤를 따라도 모자랄 판국에 저리 불손하게 구는 것도 당연히 예상한 반응이다. 조맹덕은 짐짓 고민하는 것처럼 뒷짐을 지고 곽봉효에게 넌지시 물었다.

 

"걷기 싫으냐?"

"예, 해도 뜨거운데 굳이 그런 수고를 하기는 싫습니다."

"흐음. 상황이 상황인지라 가마는 여의찮고. 상여는 몇 남았는데, 그거라도 타고 올 텐가?"

"······."

"타기 싫으면 걷든지."

 

곽봉효가 숨기지 못하고 표정을 대판 찌푸렸다. 대놓고 저를 도발하는 남자의 태도에 순간 오기가 울컥 치민 그는 강제나 다름없는 권유를 받아들였다.

 

"...걷지요."

"잘 생각했다. 가자."

 

조맹덕이 마루 아래로 내려오는 곽봉효에게 손을 뻗었다. 잠시 휘청이던 곽봉효가 그 손을 맞잡고 신발을 신었다. 마지못해 걸음을 떼면서도 곽봉효는 불퉁한 표정으로 투정을 섞어 중얼거렸다.

 

"순 억지신 거 아셔야 합니다."

"걷겠다고 한 건 너다, 봉효."

 

두 사람은 나란히 후원을 걸었다. 자갈이 발에 밟혀 잘그락대는 소리가 났다. 어느덧 계절은 바뀌어 추위가 물러가고 새순이 피어오르는 초봄이었다. 내리쬐는 한낮의 햇빛은 따스하다지만 쌀쌀한 칼바람은 여전했다. 켁켁 기침을 내뱉은 곽봉효가 목을 가다듬더니 조맹덕에게 슬그머니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무엇을?"

"제 기분을요."

"입구서부터 우중충한 먹구름이 들이닥치는데 당연히 우산을 펴야지."

 

예전부터 곽봉효는 제 기분이 별로인 것을 죄 없는 동료들에게 풀고 다녔다. 분풀이의 대상은 장수와 책사를 가리지 않았고 당연하게도 진영에서는 그에 대한 평판이 바닥을 쳤다. 이를 유일하게 조정할 수 있는 조맹덕 또한 그를 방임했으니 드잡이질 당한 피해자들만이 마구잡이로 꼬인 곽봉효의 성질머리에 넌더리를 칠 뿐이었다. 

아니면 지금처럼 제 주인을 찾아가 바락바락 따지고 들거나. 조맹덕은 차라리 이 편이 더 낫다 여겼다.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해도 아랫사람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말이 나오는 것은 군주 된 입장으로서 어지간히 거슬리는 일이 아니었다. 괜히 그들을 찾아가 다툼을 초래할 바엔 저한테 와서 성질이나 부리다 마는 것이 낫지 않느냐고 조맹덕은 생각했다. 그러면 조금이나마 타일러서 돌려보낼 수 있으니까. 오늘처럼 말이다.

 

"문원 좀 그만 괴롭혀라."

"제가 뭘 했다고요."

"그 덩치 큰 녀석이 네가 근처에 오기만 해도 쭈뼛거리며 도망치는 꼴 좀 그만 보고 싶어서 그런다."

"저는 장 장군에게 말 타는 것 좀 알려달라 했을 뿐입니다. 허리 잡아 안장 위로 얹어주는 게 그리도 어렵답니까?"

"그 녀석이 도통 숫기가 없는 모양이지."

"같은 사내끼리 무슨 숫기랍니까? 염병할."

 

따스한 햇빛이 드리운 봄날씨에도 곽봉효는 별안간 닭살이 돋아 팔뚝을 벅벅 문질렀다. 질색하는 곽봉효를 보며 조맹덕이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차라리 나한테 도와달라 부탁하면 순순히 들어줄 것을 뭣하러 그놈한테 가서 알랑거리느냐?"

"사공은 툭하면 저를 놀려먹으시니까요."

"네가 말 타는 모습을 보고 안 웃을 사람은 없다. 아니, 그걸 타는 거라고 하면 안 되지. 간신히 붙어 있다는 편이 더 어울리겠구나."

"거 보십쇼. 지금도 이렇게 흥이 나셨는데 직접 보시면 무슨 말을 들을지 감당이 안 됩니다."

"문원은 뭐라 하던가?"

"재능은 없어 보이니 그냥 마차나 수레에 오르라던데... 썩을, 내가 무슨 짐덩이입니까? 짐차에 실려 운송되는 보릿자루 취급이라니."

 

단단히 심통이 난 곽봉효의 표정을 본 조맹덕이 넌지시 그를 달래듯 말했다.

 

"서량의 한혈마는 사람 둘을 기꺼이 싣고도 남는다 하니 내 뒤에 너를 태우면 해결되는 문제 아니냐."

"저는 '빨간 망토 두른 놈이 조조다!'에 휘말려 같이 죽고 싶진 않은데요."

"봉효야, 한 번 전장에 같이 나섰으면 그건 동귀어진을 약속한 사이나 다름없다."

"무슨 옷자락이 스치면 혼인해야 한다는 말이랑 똑같이 들립니다만. 됐습니다. 차라리 걷고 말지."

"휘하의 최고 책사를 일개 보병과 동일선상에 올릴 수는 없지."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정 안 되면 갈기라도 움켜잡고 말에 붙어 있어보죠, 뭐. 떨어지면 누군가는 잡아줄 거 아닙니까."

"대놓고 나를 보면서 말하는군."

"그럼 장문원보고 잡아달라 할까요?"

"당연히 내가 잡아줄 일이지."

 

그제야 곽봉효는 표정을 풀고 흠 소리를 냈다.

 

"그런데 언제까지 걷습니까?"

"왜?"

"이미 한 바퀴는 다 돈 것 같아서요."

"네 말대로라면 아까 봤던 화단이 나와야 하는데 보이는 건 은행뿐이지 않느냐."

"사람마다 정의하는 한 바퀴는 다르고, 저는 벌써 그 한 바퀴를 다 돌았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궤변이로군."

 

불만스럽게 헛소리를 늘어놓는 곽봉효를 조맹덕이 힐끔 곁눈질로 살폈다. 창백한 안색에 이마가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물들어 있었다. 조맹덕은 천천히 발걸음을 늦춰 걸었다.

 

"새로 바꾼 약은 잘 맞고?"

"싫습니다. 거지 같은 맛이 나서요."

"맛을 따지는 걸 보니 살만한가 보군 그래."

"사공도 삼시세끼 그 걸레 빤 물 드셔보시면 절로 알게 되실 겁니다."

"그 걸레 빤 물 열 포에 한 식읍 조세가 모조리 들어가니 이것만 명심해두거라."

"제 몸을 황금으로 만들려고 그런 걸 먹이십니까?"

"글쎄, 정말 네 말대로 된다면 차라리 나았을 성싶다."

 

그럼 적어도 병에 걸리지는 않을 테니까. 뒷말을 삼킨 조맹덕은 연못 근처로 걸어갔다. 곽봉효가 헉헉거리며 그를 좇았다. 조맹덕은 후들대는 다리로 겨우 제 뒤를 따르는 허약한 책사를 바라보고는 끌끌 혀를 찼다. 연못 위로 이어진 길쭉한 다리를 따라 걸으면 바로 누각이었으나 상태를 보아하니 걷는 것은 고사하고 두 다리로 버티고 서 있는 것도 대견했다. 

조맹덕은 연못을 건너지 않고 고석을 깎아 만든 의자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휘청휘청 걸어온 곽봉효가 그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안 그래도 희멀건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송장만도 못해보였다. 옷자락으로 입을 틀어막고 한참 기침을 토해낸 다음에야 곽봉효는 겨우 진정한 듯 숨을 골랐다. 

 

"괜찮나?"

"예. 잠깐 어지러워서 그럽니다."

"약을 바꿔야겠군."

"관두십시오. 소용 없습니다."

"시도는 해봐야지."

"그럼 적어도 맛은 먹다 뱉지 않을 수준으로 구해다 주십시오."

 

마른기침을 쿨럭대면서도 농을 칠 정신머리는 있는지 곽봉효가 킥킥거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조맹덕의 표정이 미묘했다. 의자에 앉지 않고 제 앞에 덩그러니 서 있는 조맹덕을 바라보며 곽봉효가 말했다. 

 

"천명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습니까? 이 가가 아무리 이기적이어도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역도의 뒤를 따르면서 하늘의 명은 잘도 따르는군."

"역도라니요. 사공은 고작 역도 따위가 아닙니다."

 

“천하를 상대로 기망하는 분이 바로 당신이잖습니까.” 곽봉효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조맹덕은 잠시 말이 없었다. 드물게 피곤한 안색으로 곽봉효를 내려다보던 조맹덕의 입이 슬며시 열렸다.  

 

"봉효, 네 젊은 혈기를 어찌할까." 

"······." 

 

젊은 혈기라는 격동적인 표현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보이는 파리한 안색의 남자는 그저 마른 입술을 짓씹으며 큭큭 웃을 뿐이었다. 

 

"설마 두려우십니까?"

"······."

 

곽봉효의 눈이 푸른 안광으로 희번덕했다. 조맹덕은 잠자코 곽봉효가 지껄이는 대로 놔두었다. 흡사 광인의 것처럼 번들대는 눈동자가 조맹덕을 똑바로 쏘아봤다.

 

"아니, 아니지요. 그럴 분이 아니시지요. 설령 그렇더라도 아니라고 대답하셔야 합니다. 사공은 그런 인간입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급하게 말을 잇느라 멎었던 기침이 터진 모양인지 곽봉효는 심하게 콜록거렸다. 조맹덕은 그가 기침을 멈추고 끝까지 말할 수 있도록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었다. 마침내 헐떡거리던 숨이 가라앉고 나서야 곽봉효가 음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직은 안 죽습니다."

 

아직은요. 자신에게 되새기듯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차가운 바람에 실려 흩어진다. 

 

곽봉효의 내면 깊은 곳에는 자기파괴욕이 존재했다. 뱀처럼 똬리를 틀고 꿈틀대는 그 본능을 곽봉효 스스로 잘 알았다. 본디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났다. 그는 자신을 질료삼아 연소하는 면화약이었다. 제 명줄이 그리 길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불길은 더욱 사납게 타올랐다. 연소의 끝에는 타고 남은 재뿐만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자신을 태우는 꼴이다.

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곽봉효는 말아쥔 주먹을 천천히 풀었다. 힘을 주어 움켜쥐느라 하얗게 질렸던 손에 피가 돌아 온통 붉게 물들었다. 힘없이 고개를 떨구는 곽봉효 앞으로 굳은살 배긴 손이 불쑥 뻗어나온다. 

 

"그럼 됐다."

"······."

"이만 가자. 날이 춥다."

 

조맹덕은 세차게 타오르는 불의 근원을 알아본 유일한 사람이다. 곽봉효의 자기파괴적이고 변덕스러운 들불 같은 성격을 꿰뚫어본 단 한 사람이 바로 조맹덕이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곽봉효에게 손을 흔들었다. "어서." 채근하듯 슬슬 흔들리는 그 손을 곽봉효가 빤히 쳐다보다가 마지못해 마주 잡고 일어섰다. 

 

"배고프니 밥이라도 내어주시죠."

"뻔뻔하긴."

"다 알고 들이신 거 아니십니까?"

"거두었으니 책임지라 이거군."

"영민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