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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경단 활동이 끝났다. 유독 긴 밤이었다. 시간상으로는 겨울의 밤보다 해가 짧았지만 체감 상으로는 몇 배는 더 길었다. 고담의 여름은 캘리포니아의 여름에 비교하면 시원한 편이었지만 온몸을 두꺼운 슈트를 두르고 긴 망토가 등을 휘감고 있다면 말이 달랐다. 브루스는 케이브에 도착했다. 지하의 서늘한 공기가 드러난 그의 턱을 달콤하게 쓰다듬었다. 카울을 벗어던지려던 브루스는 다른 이의 존재에 손을 멈췄다.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나와.”
“정말 엑스레이 비전이 없는 거 맞아, 브루스?”
“그래. 등에 눈이 달렸으니까.”
“정말? 저번에 봤을 때는 없었잖아! 내가 만져보기까지 했는데!”
“클락, 장난칠 기분 아니니까 나와.”
여름이 되면 컨디션이 급격히 저하되는 밤의 황태자와 달리, 낮의 수호신은 이 계절만 되면 에너지가 넘쳤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사랑해 마지않는 금빛 햇살이 온종일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충전이 되다 못해 과도했다. 넘쳐나는 에너지를 주체 못 하겠는지 클락 켄트의 옷을 입고 있는 주제에 기자 양반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브루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덥고, 불쾌지수는 높았고, 피곤했다. 얼른 피와 땀과 먼지를 씻어내고 침대로 뛰어들고 싶었지만, 자신이 움직일 때마다 등 뒤로 외계인 한 명이 따라다녔다. 끝내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브루스가 발꿈치를 멈춰 세웠다.
“뭘 원해?”
천진한 파란 눈동자가 빛났다.
“하고 싶……”
“안 돼.”
“하지만……”
“안 돼.”
“브루……”
“안 돼.”
“왜!”
클락이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밀었다. 귀여워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맞았다. 그래서 브루스의 마음을 녹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도 맞았다. 브루스는 카울을 벗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지금 그를 지켜주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이제 그만 가. 문이 어디 있는지는 알겠지.”
“브루스.”
내내 그의 뒤를 쫓던 클락이 붕 날아올라 그의 앞에 내려앉았다.
“비켜.”
“브루스, 얘기 좀 해.”
“지금 하고 있잖아. 그리고 이제 끝났어.”
“브루스, 젠장. 왜 요즘 날 피하는 거야?”
클락의 손이 그의 팔에 닿았다. 여름밤의 열기로 달궈진 인간의 피부보다도 더 뜨거운 체온이었다. 브루스는 불에 덴 것처럼 손을 떨쳐냈다. 클락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난 모르겠어, 브루스. 우리 잘 지냈잖아. 같이 보낸 밤들…… 즐거웠잖아, 그렇지?”
그랬다. 브루스는 인정했다. 지난 삼 개월은 그의 인생의 황금기였다. 자경단 활동을 끝내고 외롭고 습한 저택으로 돌아오면 저를 맞이하는 두 팔이 있었다. 그의 가슴에 안기고 그의 것을 제 속에 품으며 아침까지 온기에 휘감겨 있을 수 있던 꿈같은 나날들이었다. 그것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내린 얼마 되지 않는, 동시에 수많은 판단 실수 중 하나였다. 브루스의 멍청한 심장은 단순히 체온을 공유하는 것 이상을 원하기 시작했다. 그 멍청함이 더욱 강해지기 전 끊어내야 했다.
“……비켜.”
“혹시 내가 하면서 무슨 말 했어? 아니면 아프게 했나? 그래, 그래서 그러는 거야?”
“아니.”
“그럼…… 그럼 이유가 뭔데?”
클락의 눈망울에 브루스는 어금니를 깨물며 말했다.
“이제 끝내자는 얘기야.”
“무슨……”
브루스의 손가락이 체크셔츠에 감긴 클락의 가슴을 찔렀다. 너. 그리고 스스로의 멍청한 가슴을 찔렀다. 그리고 나.
“섹스하는 관계, 끝내자고.”
“그럼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말해줘.”
클락이 말하자 브루스가 버럭 외쳤다.
“젠장, 클락! 그냥 끝내! 무슨 이유가 필요해? 그냥 서로 좆 쑤시고 박히는 사이였잖아! 사귀는 사이도 아니었는데 납득하고 말고 할 이유가 뭐가 필요해?”
“하지만 브루스, 난…… 너가 말로는 그렇게 얘기했어도……”
“그렇게 얘기했어도 뭐? 클락? 내가 널 사랑하기라도 한 줄 알았다고? 난 배트맨이야, 슈퍼맨. 생각이라는 걸 좀 해.”
브루스는 입 안을 깨물었다. 제 신랄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줄행랑을 칠 줄 알았더니 눈앞의 남자는 고담의 범죄자들과는 달랐다. 멍청한 체크셔츠에 멍청한 안경을 멍청하게 걸치고 멍청하게 우두커니 서있는 남자는 슈퍼맨이니까. 강철의 남자는 오히려 그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 뒤로 물러서야 했지만 브루스의 발은 말을 듣지 않았다. 두터운 안경알로도 새파란 눈동자의 아름다움을 흐리지 못했다. 케이브 안으로 달빛이 쏟아졌다. 눈앞에서 한 쌍의 하늘이 빛나고 있었다.
“브루스.”
클락이 천천히 그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의 손이 브루스의 발목을 감쌌다.
“지금 뭐 하는……”
“쉬. 가만히 있어, 브루스.”
클락은 그의 발목을 들어 올렸다. 부츠를 벗기고, 드러난 맨발의 발등에 입을 맞췄다. 크립톤 인의 숨결이 여린 살을 간질였다. 브루스는 발을 빼려고 했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
“싫으면 말해, 브루스. 장난칠 생각 말고, 거짓말할 생각도 말고 정말 진심으로 싫으면…… 싫다는 한마디면 돼.”
그의 복숭아뼈에 머물던 뜨거운 손가락이 떨어졌다. 눈높이가 다시 같아졌다. 클락의 손이 그의 가슴에 닿았다. 손가락이 가슴에 새겨진 문양을 따라 움직였다. 지나간 자리에 열기가 남았다. 상의를 벗겨내며 뜨거운 숨결이 귓가를 스쳤다. 브루스는 몸을 떨었다. 입술을 달싹였다. 그 움직임에 클락의 손이 멈췄다. 목덜미에 검은 머리칼이 스쳤다. 제 어깨에 이마를 기대고 크립톤 인은 억만장자의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마침내 새어 나온 말은 보잘것없었다.
“땀 흘려서……”
그 답례로 움푹 파인 쇄골에 흠뻑 키스가 고였다. 여름밤의 산들바람이 드러난 그의 상체를 어루만지고 지나갔다. 땀이 식어갔지만 몸의 열기는 내려가지 않았다. 클락은 그의 등 뒤에 섰다. 크립톤 인은 달빛을 받을 때마다 은빛으로 빛나는 인간의 거미줄 같은 상흔에 매료되었다.
“아름다워, 브루스.”
어떤 찬사의 말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클락의 입술이 등에 난 거미줄을 따라 찬사의 입맞춤을 쏟아냈다. 목덜미에 도드라진 뼈부터, 날개 뼈의 불거진 부분과 꼿꼿하게 선 등을 따라 발달 된 어깨에 비해 잘록한 허리와 날씬한 골반까지, 그의 입술은 지구 상에서 가장 완벽에 가까우면서도 완벽하지 못한 인간의 아름다움을 탐했다. 그의 체향과, 땀과, 여름의 열기가 뒤섞인 짭쪼름한 맛이 혀끝에 맴돌았다가 사라지며 그의 구미를 당겼다.
클락의 입술이 허리 아래에서 멎었다. 그의 손은 브루스의 양 골반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잠시 제 손바닥 아래의 떨림을 즐겼다. 조금씩 빨라지는 심장 소리가 귓가에서 황홀하게 울려 퍼졌다. 제 입술을 막는 장애물을 조금씩 벗겨냈다. 드러나는 살갗이 창백했다. 탄탄한 근육과 함께 도톰하게 올라온 둔덕을 살며시 깨물었다. 입을 떼자 붉은 자국이 남았다. 흰 종이에 제 흔적을 남기듯 클락은 브루스의 엉덩이에 흔적을 남겼다. 어떤 총알과 칼도, 고담의 어떤 악당들도 손대지 못한 성역이었다. 그 첫눈이 내린 언덕같이 깨끗한 곳에 클락은 연이어 꽃잎 같은 제 흔적을 남겼다.
브루스의 발목에 걸쳐진 옷을 빼내며, 클락은 그의 앞으로 옮겨가 그의 발목부터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종아리, 무릎을 따라 말 근육처럼 늘씬하게 짜인 허벅지를 핥아 올라갔다. 제 뜨거운 혀 아래서 녹아드는 인간의 달콤함을 맛보았다. 분명 거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는데도, 제 어깨에 내려앉은 손은 자신을 밀쳐내지 않았다. 솔직하지 못하고, 고집쟁이에 독불장군인 배트맨은, 브루스 웨인은 완벽했다. 그의 달콤한 몸을 가린 슈트를 벗겨내고, 그의 심장에 견고히 둘러싸인 벽을 뚫고 넘어가면, 가장 달콤한 것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슈퍼맨은, 클락은 그것을 그 주인에게서 직접 건네받을 작정이었다.
“브루스.”
클락은 그의 아랫배에 입을 맞추었다가 여린 살을 깨물었다가 하며 속삭였다. 대답 대신 떨림이 섞인 숨이 머리칼을 간질였다.
“그래. 우리 끝내자.”
“클락……”
“친구로서 섹스하는 관계…… 난 싫어. 보이스카우트라고 놀려도 좋아.”
클락의 입술은 점점 더 위로 올라갔다. 움푹 들어간 배꼽에 머물렀다가 발달된 가슴 사이의 골짜기에 머무르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턱 아래서 멎었다. 그의 손은 허락을 구하듯 카울의 끝을 잡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브루스가 저항하지 않자, 크립톤 인은 아름다운 얼굴을 가리고 있던 장막을 걷었다. 늘 창백하던 뺨은 장밋빛으로 상기되어 있었고, 흐트러진 땀에 젖은 검은 머리칼이 반듯한 이마를 반쯤 가리고 있었다. 평소의 정돈된 모습과는 정반대의 얼굴이었지만 아름다움은 변치 않았다. 클락은 어떤 보석보다 아름다운 눈동자를 향해 속삭였다.
“이제 섹스 말고…… 사랑을 나누고 싶어.”
겨울 하늘같은 눈동자가 그를 응시했다. 고고하게 빛나는 그 시선을 마주하며 크립톤 인은 뺨을 붉혔다. 섬세한 손가락이 내려와 그의 뺨을 꼬집었다. 전혀 아프지 않았지만 클락은 울상을 지으며 아픈 척을 했다. 코에 걸쳐졌던 안경이 벗겨졌다. 어디론가 던져지며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났지만 클락은 신경 쓰지 않았다.
“넌 정말 스몰빌이야.”
“괜찮아. 난 ‘스몰’과는 거리가 머니까.”
“로이스 레인한테 그런 농담 했다가는 부서 이동을 하게 될걸……”
브루스가 그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그의 어깨를 깨물던 클락의 입술이 인간의 입술에 점령당했다. 뜨거운 혀가 뒤섞였다. 브루스에게서는 땀과, 피와, 고담의 밤 냄새가 났다. 자신과는 정반대의 향이었다. 그의 몸을 뜨겁게 달구는 달콤함이었다.
“난 사랑하기 쉬운 사람이 아니야.”
“알아.”
“내일 아침이면 겁을 먹고 또다시 너를 밀어낼지 몰라.”
“알아.”
“넌 정말 막무가내야.”
“알아.”
맞닿은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클락은 눈을 깜빡였다. 눈앞에 선 남자의 미소는 귀한 것이었다. 이따금 미소를 짓고는 했지만 눈으로만 웃거나, 입술만 슬쩍 당기는 정도였다. 지금 그의 앞에서 브루스는 눈과 입술 모두 부드럽게 휘어있었다. 클락은 그의 눈가의 주름에 걸린 웃음에 입을 맞추고 싶었다. 그 욕구가 너무나 강해 가슴이 아렸다.
브루스의 길쭉한 다리 하나가 탱고를 추듯 그의 허리를 휘감았다. 그의 셔츠 가슴팍을 잡아 벌린 남자가 밤처럼 어둡고 꿈처럼 깊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어디 한번 그 사랑이란 걸 나눠보지.”
브루스의 손이 바지 지퍼를 내리는 순간 클락은 그의 골반을 잡아 들어올렸다. 우아한 다리가 모두 그의 허리를 휘감았다. 브루스의 손이 단추가 뜯어진 셔츠 안의 맨가슴에 내려앉았다. 뜨거웠다. 둘 중 누구에게서 흘러나온 열기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클락의 손가락이 탄력 있는 곡선을 그리는 엉덩이 사이로 파고들었다. 저를 반기는 입구의 주름을 훑어나가며 조금씩 그 얇은 근육을 이완시켰다. 브루스의 손톱이 제 등을 할퀴었다. 귓가에서 가르랑거리는 신음소리가 들고양이 같았다. 클락은 그의 어깨 위 자신이 남겼던 키스 마크에 입을 맞추었다. 다치지 않도록 천천히 자신의 들고양이를 제 성기 위에 내려놓았다. 끙, 불만 섞인 신음과 함께 억만장자의 손가락이 크립톤 인의 젖꼭지를 꼬집었다. 고통과 비슷하지만 쾌감에 가까운 감각에 움찔하는 사이 인간은 그의 성기를 한 번에, 모조리 삼켰다.
“브루스……!”
“아……! 으응, 읏.”
클락의 손가락이 제 성기에 의해 활짝 벌어진 엉덩이를 붙잡았다. 배트맨의 경고하는 목소리가 곧장 따라붙었다.
“그 ‘스몰’하지 않은 물건 다시 뺄 생각하기만 해봐, 슈퍼맨.”
“전혀.”
눈부신 미소와 함께 테스트에 통과한 보상이 내려졌다. 브루스의 혀가 그의 완벽한 입술을 파고들었다. 서로의 혀가 섞였다. 클락은 뜨겁고, 끈적하고, 꽉 조이는 브루스의 내벽에 깊게 스스로를 파묻었다. 제 목을 끌어안은 인간이 녹아내렸다. 달콤한 꿀물이 되어 그를 휘감았다. 달달한 군것질거리에 버릇이 나빠진 어린애처럼 클락은 품 안의 인간을 놓을 수 없었다.
“사랑해.”
수줍은 사춘기 소년처럼 속삭였다. 브루스가 제 입술을 깨물었다. 허리 아래로는 제 성기를 탐욕스럽게 집어삼키고 있으면서, 허리 위로는 자신 못지않게 사춘기 남자애처럼 우물쭈물 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그의 맨가슴에 머리를 기댄 남자의 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솜사탕 한 조각이 뜨겁게 달아오른 심장 한구석에서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클락은 브루스의 붉어진 귓바퀴를 핥았다. 지금으로는 이걸로도 족했다. 이 달콤함을 자신만 독차지할 수 있다면 클락은 기꺼이 기다릴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