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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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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리모는 저주받은 사람이었다.

연구실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어느정도 일까, 20%? 아님 30%? 어찌되었든 지금이 가솔린 가스 하나때문에 쩔쩔매면서 수십번의 잡다한 폭발사고를 거친 20세기도 아니였기에, 리모는 제가 너무 마음이 풀어져있었다고 확신했다. 작은 불씨는 큰 화재로 이어졌으며, 화재는 여러가지의 잡다한 기계들과 만나 폭발사고라는 결과를 낳았다. 유이한 친구인 차 도운은 콘크리트에 다리가 깔려 꼼짝하지 못하였다. 임신한 제 아내와 도운의 아내, 그리고 쌍둥이 아들들 또한 연기 속에서 잃고 말았다. 제 몸뚱아리 또한 무너진 건물의 잔해 탓에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을 느끼며, 리모는 온 힘을 다해 손을 내밀었다. 살고싶다는 욕심이 내민 구원의 요청이었다. 

 그리고 구원은, 제가 전혀 원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이어졌다. 제로는 저를 찾아 커다란 몸뚱아리를 움직였다. 마인드 코어를 기른 주인이 저라는 것을 아는지, 그것은 마치 고장난 듯이 또봇의 규정만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었다. 무거웠던 하반신 부근이 가벼워지며, 제로가 자신의 손에 저를 올려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는 덕택에 몽롱한 정신이 깨어지자 리모는 고함을 질렀다. 안돼 제로! 저곳에 내 아내가 있어! 작고 큰 폭발음이 들렸다. 눈 앞에서 불꽃이 모든 것을 연소시키겠다는 듯이 낼름거렸다. 무너져나가는 건물이 눈앞에서 생생하게 보여지고 있었기에, 리모는 울부짖을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삶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은 저 불구덩이 안에 있었다.

 

 정신을 차리니 병원이었다. 언젠가 보았던 삼류 드라마에서 남주가 사고현장에서 정신을 잃고 깨어나는 모습을 보고서는 아내와 함께 낄낄대며, 저런 억지같은 설정이 언제까지나 통한다고 생각할지 걱정이라고 떠들어 대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 아마 쇼파 앞에 놓여져있던 탁자에는 제로의 마인드 코어가 놓아져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서는 뭐라고했더라, 리모는 기억을 되짚으며 생각하였다. 몽롱한 정신은 아직 제 아내를 잃었다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듯 멍하게 눈을 뜨고 있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링거를 매달고 있는 지지대와 하얀 바탕위에 회색깔의 격자무늬가 나있는 천장 뿐이었다. 그리고서는 리모는 장난스러운 말투로 제로의 마인드코어에게 이렇게 말했다. 넌 내가 정신을 잃기 전에 제대로 꺼내와야한다. 짐짓 엄한 말투로 경고를 주는 리모를 보며 그의 아내는 깔깔거렸고, 제로의 마인드 코어는 평소보다 조금 더 밝은 빛을 내었을 뿐이었다. 그래, 그것 뿐이었다. 바보같은 로봇. 그렇게 대답했잖아. 리모는 생각했다. 붕대에 감겨있지 않는 오른팔로 눈물을 닦으며 그는 울음소리를 삼켰다. 끅끅대는 소리만이 병실을 맴돌았다.

 

 병원에서 거주한지 일년이 지났다. 화재가 남긴 화상은 여전히 제 몸에 거주하고 있었지만, 그는 이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으며, 몸을 감싸고 있던 붕대의 수 또한 줄어있었다. 눈을 깜빡였다. 모든 것이 꿈같은 기분이었다. 악몽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눈을 감았다 뜨면, 하얀 병실이 아닌 아늑한 방안이 저를 반겨줄 것 같았다. 악몽에 지쳐 땀이 잔뜩 난 자신을 아내는 아무 말 없이 껴안아 줄 것이며, 리모는 그런 아내의 품 안에서 제가 겪었던 꿈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그럼 뭐라고 해줄까. 나쁜 제로라면서 아침이 되면 리모의 꿈 이야기를 제로에게 들려주며 그런 일이 없게 잘하라고 제로의 차창을 몆번 가볍게 때려줄 것이다. 그러면 도운과 그의 아내는 뭐라고할까. 하나와 두리를 서로 한명씩 끌어안으며 괴상한 소설책이나 읽더니 꿈도 불길한 것이나 꾼다고 타박을 줄 테였다. 그래 이게 일상이다. 병원에서 질릴 만큼 하얀 내부를 맛보며, 홀로 병실에 앉아있으며 맛보는 정적은 이미 일상을 벗어난지 오래였다. ....6월이 되니 사람들로 그득해진 해운대! 앗싸, 그들이 뭐하나 궁금해지는데...의사가 심심하지는 않냐며 나름 배려라도 틀어준 티비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히히덕거리며 서로 손을 잡고 있는 연인이 보였다. 친구들과 서핑을 즐기는 청년이 보였다. 아이들과 애써 모래성을 짓는 부모가 보였다. 왜 나는 불행하지? 리모의 머리에 그런 생각이 스쳤다. 돌발적으로 일어난 발상이었다. 나는 지금 모든 것을 잃었는데, 왜 너희는 웃는거지? 그곳까지 생각이 미치자, 리모는 미소를 지었다. 내가 편하게 병원에서 숨쉬는 동안 제 아내는 영원히 불구덩이 속에 가둬져있어야했다. 오지않을 절 기다리며 소리를 지르고 있어야했다. 몸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끼며, 괴성을 지르며 그를 애타게 부르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리모는 낄낄대었다. 간단하였다. 그들 또한 일상에서 벗어나면 되는 일이었다.

 

 제로 덕택에 리모의 몸은 그렇게 큰 사고를 겪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꽤나 가벼운 화상일 뿐이었다. 하지만, 상처가 상처인데다가, 하반신은 아예 마비 직전까지 갈 뻔한 탓에 퇴원은 꽤나 느리게 진행 되었다. 매일같이 어둡게 병실을 해놓은 탓인지, 아님 마리 앙뚜와네뜨가 처형당하기 직전의 머리가 스트레스로 하얗게 새어버렸다는 것이 거짓은 아닌지, 리모의 머리는 반 쯤은 이미 하얗게 변해 있었다. 의사가 조심스레 염색을 권했지만 그는 거절하였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흰 머리는 아내의 고통을 잊지 않으라는 각인과 다름 없었기에, 그는 현재의 머리를 유지하기로 마음 먹었다. 퇴원을 앞두고서는 마지막으로 이불을 개며 정리하는 중에, 병실의 문이 열렸다. 저와 같지만, 탈색을 한 듯 새하얀 머리가 리모를 반겼다. 지옥 직전까지 간 기분은 어떤가요, 천재씨. 비꼬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 목소리였다. 그의 병실은 1인실이었기에, 처음 그를 보았을 적에는 병실을 오해했나 싶었지만, 백발의 청년의 말을 들으니, 이는 저를 찾아온 것이 틀림없었다. 분노로 점칠 된 자신의 얼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린 청년은 웃음을 보이지도 않았다는 듯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는 괴물을 잡아먹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오글거릴 수도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청년의 눈빛은 진심인 것 같아. 리모는 슬며시 들은 제로의 또키를 내려두었다. 들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시작점이었다.

"우리는 약자입니다. 나는 어릴 적에 학대를 받으며 자라났으며, 막 사회에 진입하였을 적에는 목숨을 수십번이나 위협받았으며, 어떠한 진실을 떠올렸습니다. 괴물을 잡기위해선 내가 더 큰 괴물이 되어야한다는 것을 말이죠."

청년은 굉장히 중요한 말을 내뱉듯이 속삭였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지?" 리모는 자신의 이상이 청년의 말과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며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미 그의 마음은 청년에게 동화되어있었다.

"그쪽은 모든 것을 잃었지만, 세상엔 많을 것을 가지고 있는 쓰레기들이 많죠, 일반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보단. 글쎄, 사회적 강자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는다고 상상해 보시죠, 매혹적이지 않습니까?"

청년의 말을 듣자 리모는 상상했다. 부유하고, 건강한 신체에, 착한 부인과 자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한것을 노리는 이에게 징벌을 내리는 상상을 그런데도....리모는 생각하였다. 괴물이 될 준비는 마쳐져있지만, 청년의 이상의 방향은 제가 원하는 방향과 약간 삐뚤어져 있었다. 저가 원하는 방향은 부유한 상황에 상관없이 행복을 빼앗고 싶은 목표가 있었다. 그렇기에, 리모는 선뜻 청년에게 동참하고 싶다고 말하기가 떨렸다. 그런 리모의 생각을 아는지, 청년은 말을 내뱉었다. "우리는 당신의 복수에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를 도와주고 당신은 당신의 멋대로 일을 실행해도 좋아요. ...우리는 당신의 생각보다 조금 더 큰 조직이며, 당신의 일을 도울 것입니다." 청년은 입꼬리를 올렸다.

 

 리모는, 청년이 내민 손을 붙잡았다. 그것은 구원이었으며, 징벌의 시작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