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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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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운 아저씨는 요리를 아주 잘 하셨다. 홀아비 살림이라 어쩌고저쩌고 해 봐야 못 하는 사람은 못 하는 법인데 아저씨는 잘 하셨다.
네옹 형이 가져온 삼계탕 냄비가 도운 아저씨 솜씨라는 건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맛이나 냄새 이전에 냄비가 도운 아저씨네 냄비인걸.
한두 숟갈 떠먹던 두리가 기어코 울음을 터뜨렸다.
“아빠~!!”
“야, 뭘 우냐? 바로 옆집인데. 그냥 돌아가면 될걸.”
세모는 냉담하게 대꾸해버렸다.
도운 아저씨한테 아빠 면회 갈 수 없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아저씨는 복잡한 표정을 하고 눈길을 피하며 답하셨다.
교도소는 세모 같은 어린이가 갈 만한 곳이 아니다, 리모는 건강하게 잘 있으니 너무 걱정 마라.
인터넷으로 교도소나 면회 등을 검색해봤지만 면회에 나이 제한이 있다는 말은 찾을 수 없었다. 가족이면 신청만 하면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도운 아저씨가 아빠 문제로 거짓말할 사람이 아니라는 건 이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불안했다.
사실은 아빠가 세모를 보고싶지 않은 것 아닐까.
이대로 영영 아빠를 다시 보지 못하고 도운 아저씨네 집에서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괜찮아, 늦지 않았어.”
네옹 형이 말했다.
“부모님께 가는 데 늦은 시기란 없어. 박사님은 분명 야단 안 치고 받아주실 거야.”
그건 사실이라고 세모도 다시 생각했다. 입양 후 한 번도 아빠 소릴 안 한 자신도 혼나지 않았으니까. 잘못했다고, 아빠 아들 할 테니 가지 말라고 울었을 때 아빠도 울었으니까.
왜 그동안 아빠라고 부르기 싫었냐고 물어볼 때도 아빠는 화나서 묻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이고 강조하셨다. 궁금한 거라고, 세모가 싫어할 뭔가가 있다면 아빠가 고쳐야 하니까 묻는 거라고.
그 태도가 분명 진짜였기 때문에 세모는 도리어 아빠의 비서인지 남자 애인일지 모를 그 아저씨에 대해 묻지 못했다.
하나와 두리가 네옹 형과 또봇 조종 이야기 하는 동안 세모는 오랜만에 그 아저씨 생각을 했다.
아빠가 감옥에 가고 온통 혼란뿐이던 때 그 아저씨는 보이지 않았다. 가정부 아줌마나 다른 사람들도 많이 없어지던 때였지만 그 아저씨도 다른 사람들처럼 아빠를 버리고 떠났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무튼 이제 오늘 저녁이면 도운 아저씨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그때 도운 아저씨한테 물어보자고 생각했다. 지금은 과자를 사러 갈 때였다.

 

가석방이 확정되었다고 리모가 머뭇거리며 말하자 도운은 자기 일처럼 얼굴이 환해졌다. 세모가 그동안 얼마나 널 보고 싶어했는지 아느냐며.
그래서 교도소 정문을 나섰을 때 세모가 있는 걸 보고도 그렇게까지 놀라지 않을 수 있었다. 디룩이 와서 랩터봇으로 포위했을 때도 침착하게 빠져나갈 궁리를 할 수 있었다.
하나와 두리는 여전히 악당 리모 회장이 아빠의 착한 친구가 되어 돌아온 게 실감이 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리모는 더 애들에게 친근하게 굴고 일부러 악당 코트 차림으로 개그를 쳤다. 세모도 서먹하던 시절 따위 없었던 것처럼 끌어안았다.
세모 역시 그런 아빠에게서 떨어지려 들지 않았다. 저녁 먹고 도운이 나서서 어른들 얘기할 동안 게임이라도 하라고 떼어냈을 때에야 겨우 서재에 어른 둘만 남을 수 있었다.
“피곤하지?”
도운이 다 안다는 듯 묻자 리모는 힘없이 웃었다.
“이제 익숙해질 거야. 그동안 못한 것까지 합쳐서 이제야말로 아빠 노릇 제대로 해야지.”
“그래. 무리하지는 말고.”
도운은 여전히 주저하면서 책상으로 다가가 맨 아랫서랍을 열쇠로 열었다. 그리고는 인큐베이팅 로봇에 연결되어 있는 무채색 마인드코어를 꺼냈다.
“제로의 동체 봤어. 굉장한 일을 해냈더라.”
도운은 긴장한 걸 감추기 위해 빠른 속도로 말했다.
“동체가 손쓸 수 없을 만큼 파괴되어서 일단 코어를 분리할 수밖에 없었어. 내가 재조립할 생각도 해봤는데 역시 무리더라고. 원 제작자의 손길이 필요해.”
도운은 살짝 리모의 눈치를 살폈다.
“그래도 코어 상태는 보다시피 나쁘지 않아.”
리모는 대답하지 않았다. 코어에 손을 내밀지도 않았다.
“리모?”
도운의 목소리에 불안감이 더해졌다.
“제로가 살아남은 게 기쁘지 않아?”
“기뻐.”
리모가 딱딱하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물러나 의자에 앉았다. 휠체어에 앉는 도운이 리모의 출소가 확정되자 사다놓은 의자였다.
“파손된 동체는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복구하고 정돈해서 정비실에 보관해뒀어. 네가 나오면 언제라도 수리 시작할 수 있게. 그것도 보러 갈래?”
“잠시만.”
리모는 머리가 아픈 것처럼 두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체포될 때 제로의 코어가 무사한 걸 확인하고 도운에게 맡긴 것이 꿈처럼 생각났다.
감옥에 있는 동안 세모와 도운과 부인을 생각하고 제로를 생각했다. 이전처럼 원망해보기도 하고 제로가 도운은 제대로 구했다고 인정하느라 괴로워하기도 했다. 코어가 무사해 보였던 건 착각이고 실은 코어까지 완전히 부서졌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잠시만 더 저대로 두자.”
리모는 바닥만 쳐다보며 말했다.
“제로를 다시 보려면 마음의 준비가 좀 필요해.”
“그래.”
다행히 도운도 당장 재촉할 마음은 없어보였다. 리모는 조금 안도했다.
도운의 관대함은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지만 자신이 도운네 집에서 함께 살 수는 없다고 결정한 차였다. 회장실도 감방도 아닌 가정집에 적응하면서 하나와 두리에게까지 적응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동체를 수리해 재기동에 성공하면 그땐 세모와 도운과 하나두리에 제로까지 매일 보며 살아야 했다.
사실은 제로가 거기서 완전히 죽어버렸다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보여줄 게 하나 더 있어.”
코어를 꺼내놓은 채로 도운은 대형 파일꽂이를 가져왔다. 그리고 애들용 스케치북을 꺼내 펼쳤다.
“세모가 여름방학 숙제로 낸 그림이야.”
빨간색 큰 차를 배경으로 세모와 보라색 코트를 입은 흰머리 어른, 그리고 검은 양복차림의 좀더 큰 어른이 그려져 있었다.
“나한테도 물어보더라고. 아빠한테 비서 같은 덩치 큰 남자가 하나 늘 붙어있었는데 혹시 소식 아냐고. 그만 잘 모르겠다고 답해버렸지만, 역시 제로 맞는 거지? 로봇이라는 걸 모를 뿐 세모도 제로를 아는 거지?”
“별로 대화를 해본 적은 없을 거야.”
리모가 우물거렸다.
“제로는 주로 내 경호를 맡았고 그때 난 집에 자주 들어가지 않았으니까. 만날 일이 없었어.”
리모는 크레파스로 그려진 자신과 제로를 바라보았다. 자신은 저렇게 방긋방긋 웃고 다닌 적 없었다. 제로와 제트와 함께 세모 곁에 섰던 적도 없었다. 저 크레파스 얼룩이 정말 자신을 그린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리모는 그림에서 고개를 돌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제로가 다시 보고 싶어.”
도운이 한 말에 리모가 슬쩍 그쪽을 곁눈질했다.
“진짜 사람과 꼭 닮은 로봇이라서?”
“그것도 있고, 제로가 널 구해줬잖아.”
도운은 무채색 마인드코어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코어가 살짝 빛났다.
“사실은 나도 제로를 원망하고 있었어. 하나와 두리는 살았지만 부인도, 너도, 네 부인과 아기도 다 죽었다고 생각했으니까. 우리가 꿈꿨던 가족을 지키는 자동차의 첫 활약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해줄 수 없었으니까. 나도 또봇은 잘해야 반쪽의 성공이라고 생각했어. 이미 완성된 마인드코어가 없었다면 엑스와 와이도 아마 안 만들었을 거야.”
리모는 도운을 빤히 바라보았다.
“네가 살아있었고, 제로가 널 다시 살리는 걸 보고서 깨달았어. 제로는 정말로 가족을 지키는 로봇이었다고.”
“내가 살아있어서?”
“응.”
도운이 리모에게 다가와 손을 잡았다.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조금쯤 달라졌다 해도. 나도 변했어. 하나랑 두리도 엄마한테 어리광부리던 그애들은 아냐. 너도 그렇게 변했을 뿐이야.”
리모가 도운의 손을 맞잡았다.
“제로가........”
제로가 날 보고 싶어할까? 라는 질문은 끝내 하지 못했다.
그동안 언제나 그랬듯 보고 싶어한다면, 여전히 자신을 주인으로 따를 준비가 되어있다면 자신은 그를 볼 낯이 없었다.
만약 그동안 도운이 자상하게 돌봐준 것으로 제로가 만족하고 더 이상 예전의 잔인한 주인을 찾지 않게 되었다면, 그런 제로를 자신이 견디고 살 자신이 없었다.
리모는 도운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도운은 자신을 믿고 있었다.
“시간이 걸릴 거야.”
리모가 힘들게 말했다.
“동체를 다시 만드는 것도 그렇고, 내가 제로를 어떻게 봐야 할지도 아직은 모르겠어. 일단 동체를 재조립하면서 생각해볼게.”
“코어는?”
리모는 다시 한 번 침묵했다.
“........넌 그동안 어떻게 돌봐줬어?”
“별로 대단하게 해준 건 없어. 서재 구석에 두고 가끔 먼지 털어주고 말 걸어주고, 네 동생들도 잘 있다고 가끔 엑스 와이 제트에 대한 자료를 보여주는 정도. 그나마도 대부분 TV보도자료고.”
“.....설마 파일럿 투표도 보여준 건 아니겠지?”
도운의 표정이 구겨졌다.
“알고 있었어?”
“그 안에서도 가끔 정도는 TV도 보여주니까. 워낙 화제가 되었고.”
도운은 쥐구멍을 찾고 싶었다.
“그래도 결국 잘 기동한 걸 보면 제대로 파일럿이 정해진 거지?”
“응. 애들이 다 그렇게 들떠있는 와중에 오공이가 기본을 잊지 않고 코어를 돌봐줘서 교감이 이루어졌어.”
“잘 됐네.”
리모는 다시 제로의 코어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동안 너랑 제로의 교감은 어땠어?”
“방금 봤잖아. 그 정도야. 내가 있으면 안심하는 것 같긴 하지만....”
도운은 의미심장하게 말끝을 흐리며 리모를 쳐다보았다.
“한 번 쓰다듬어 보지도 않을 거야?”
리모는 도운을 쳐다보았다. 도운은 이제 리모를 격려하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리모는 다시 코어를 바라보았다. 처음 배양에 성공했을 때처럼 무방비한 아기 같은 모습이었다.
도운의 말없는 재촉에 견디지 못하고 코어 앞으로 다가가 손을 뻗어만 보았다.
코어가 하얗게 빛났다. 도운이 손댔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환한 빛이 뿜어져나왔다.
“제로.....!”
리모는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제로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모가 그동안 날 잘 따랐지만 보고 싶어한 아빠는 너였어. 제로도 마찬가지야.”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리모는 여전히 주저앉은 채 제로의 코어를 바라보았다.
“제로한테도 세모한테도, 난 이미 한 번 실패했는데. 이번이라고 다를 수 있을까?”
“달라질 수 있어.”
도운이 다가가 리모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이제 다시 우리 둘이잖아.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다시 우리 둘이라고.”
리모는 자기 어깨에 있는 도운의 손을 잡았다.
“그래.”